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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의 승천에 관한 기록은 신약 성경과 초대 교회 문헌에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모 승천을 처음 언급한 인물은 4세기에 활동한 성 에피파니오(315~403)였습니다.

에피파니오 성인은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의 주교로, 성모 승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습니다.

성모 승천의 가능성은 언급했지만,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하면서 지나친 성모 신심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성모 공경과 신심이 아주 활발해 그노시스주의 즉, 영지주의적 경향의 신약성경 외경 가운데 성모 승천이 언급됐습니다.

영지주의는 물질과 영혼의 뚜렷한 이원론을 특징으로 하는데, 물질을 악마의 창조물 또는 부산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적 경향에서 나온 외경들은 결국 ''젤라시오 교령''에 의해 오류로 선언됩니다.

서방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의 육신 승천 교의가 거론된 건 투르의 그레고리오에 의해서입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크레타의 안드레아, 아레오파지타의 디오시니오가 쓴 논술 ''하느님의 명칭들''에서 성모 승천을 증언하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성모 승천 교리가 신학적인 근거를 갖고 대두된 건 8~9세기입니다.

이후 대 알베르토,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성인과 18세기에 재임한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성모 승천 교의가 재획인됩니다.

이를 계기로 교황들은 성모 승천 교의를 공식화하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결국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모 승천 교리가 믿을 교리로 선포됩니다.

가톨릭교회가 성모 승천 교리를 신학적으로 연구한 지 1000년여 만에 얻은 결실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성모 승천에 관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생활을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천상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셨다"고 확인했습니다.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은 4세기 안티오키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으로 지켜진 곳은 5세기 초 예루살렘이었는데, 바로 8월 15일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8월 15일에 지내게 된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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